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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
“모든 책은 한 권의 성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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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숙 아벨서점 대표

책방은 무한한 책의 세계가 담긴 방,
시대 변해도 책과 책방 사라지지 않아


영화 〈극한직업〉을 보다 한 장면에 눈길이 붙들렸다. 아벨서점이었다. 영화 속 마약반 형사들이 잠복근무하는 장소는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마약범들의 아지트 주변으로 몇 번인가 아벨서점이 스쳤다.

빛바랜 책, 드문드문 칠이 떨어져 나간 간판을 보는 순간 그립고 반가운 마음이 샘솟았다. 지난 1월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와 만나고 나흘쯤 지났을 때 일이다. 이렇게 바랜 색으로 이루어진 그리움이 있구나, 영화를 보며 되새겼다. 빛바랜 찬란함도 있는 법이라고.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는 1950년 배다리 인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3년부터 아벨서점을 운영하며 자신의 삶을 책방에 던졌다. 다른 직업에 골몰했던 1979, 1980년을 제외하면 40여 년간 꼬박 책방을 지켰다. 책방을 떠나 있던 그가 다시 책방으로 돌아온 것은 ‘우리 사회에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단다.

그가 아벨서점을 지키던 40여 년 동안 40여 곳에 달했던 배다리 헌책방이 5곳으로 줄어들었다. 팔리지 않는 책이 그대로 처치 곤란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폐점하는 책방의 책들을 사들였다. 버려지는 책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삶의 대부분을 책방에서 보낸 곽현숙 대표는 여전히 뜨겁게 책을 사랑하고 있었다. “모든 책은 한 권의 성서”라 말하는 그의 눈은 바닥을 알 수 없이 깊었고, 조곤조곤한 목소리의 열기는 뜨거웠다.

한때 거리로 그를 내몬 것도 책을 향한 식지 않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10여 년 전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이 가시화되자 그는 매일 자전거로 40분을 달려 시청으로 출근했다. 난생처음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산업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배다리가 사라지는 일이 그에게는 야만이었다. 그에게는 기록으로 남지 못한 무언의 역사, 사람들의 체취를 고스란히 말살하는 일로 여겨진 까닭이다.

아벨서점
▲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송보배

- 1950년 5월 인천시 동구 금곡동에서 태어나셨지요? 배다리 일대 역사를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내가 배다리에 관해 기억하는 시점은 아주 어린 시절이에요. 7살 무렵 송림동으로 이사를 하니, 그 이전의 일이죠.


어린 시절 배다리를 떠올리면 사람이 많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저녁에 석양이 들 때면 빛을 등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물결이 엄청났어요. 당시 배다리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았어요.

어느 때인가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가두행렬이 있어 따라나섰다가 동네를 한참 벗어났나 봐요. 그때 기차 기적 소리를 따라 집을 찾아온 기억이 나요. 당시에는 동인천역에서 경인선 철길을 따라가는 기차의 기적 소리가 정말 우렁찼어요. 온 동네가 들썩일 만큼.

주로 그런 저녁 풍경이 가슴에 남아 있는 거 같아요.

- 대표님 어린 시절에는 배다리 일대가 번화가였다고 알고 있어요.
주변에 장사하는 곳이 많았어요. 2009년 배다리 역사 이야기를 채집하며 다닌 일이 있는데,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에는 개똥도 내놓으면 팔릴 정도였대요. 사람은 많고 물자는 턱없이 부족해서 무엇을 구하려 해도 구하기 힘든 세상이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여기는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곳이었어요. 인천에는 개항장이 있고 일자리가 있잖아요. 일자리를 찾아 올라왔지만 바로 취직할 수가 있나요? 거적을 펴고 밤을 나다가 겨우 방 한 칸을 얻고, 한 칸 방을 두 칸으로 늘려가고…. 그런 곳이에요. 배다리가. 그러니 배다리의 집들이 내 눈에 얼마나 예쁘고 소중해 보여요?

사람에게서 나오는 생기, 온기 그런 것이 엄청나게 그득했던 곳이에요. 그런 온기가 나라의 바탕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벨전시관
아벨전시관
아벨전시관
▲ 아벨전시관. 책과 배다리에 관한 전시, 시낭송회 등을 진행한다. 사진 = 송보배


- 배다리는 일제강점기 개항장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살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기반을 잡기 위해 무엇이라도 내다 팔던 피난민들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밑바닥에서 시작해 삶을 일궈가던 에너지, 그 온기가 역력한 곳이 배다리라는 말씀인가요?
뭐라도 팔아야 하니 자격이나 점포 없이 몰래 하는 뒷거래 장사도 있었어요. 성냥 황을 됫박으로 파는 사람도 많았고요.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 가진 것 없는 빈손이라도 자식들은 먹이고 키워야 하잖아요. 그렇게 안간힘을 써서 자식들을 대학 보낸 사람들이 이곳에 많아요.

- 배다리는 인천에서 3·1 만세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기도 해요.
일제강점기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를 아시죠? 그분 옷에서 일장기 마크를 지워 기사를 낸 분이 있어요.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인데, 그분이 인천 배다리 영화학교(현 영화초등학교)를 나와 서울 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민족 문제를 이야기하고 관련 단체도 결성하곤 했답니다.


그분이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에 일장기를 지우는 행동이 그냥 나왔을까요? 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터뜨릴 때까지 과정을 만들어가는 건 그 지역의 분위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기록에 남은 사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사람도 중요한 것이지요.

- 서점 이야기도 여쭤볼게요. 아벨서점을 1973년부터 운영하셨다고요?
1973년 11월부터 운영했어요. 처음 문을 연 자리는 창영교회 복지관 앞이었어요.

- 서점을 열기 전 십 대부터 많은 직업을 거쳤고, 월부 책 판매도 하셨어요. 길을 걸으면서도 손에 책을 놓지 않았다고요?
월부장사를 하며 만난 책들이 제 일생을 책으로, 책방으로 이끈 것 같아요. 그때는 걸으면서 늘 책을 보며 다녔죠. 철학책을 특별히 즐겨 읽었어요. 시집은 금방 덮었어요. 너무 뜨거워서. 시에 빠졌다가는 밥을 못 벌어먹고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을 벌어 밥을 먹어야 하는 내 환경과는 맞지 않는다 생각했어요. 그만큼 뜨거운 언어였어요.


책은 저에게 큰 스승이에요. 학교 공부보다는 책에서 얻은 게 저의 전부였어요. 그래서 내가 책을 보는 자세는 아직도 정말 진중해요. 어떤 법도를 따른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속에 정말 빨려 들어간다는 의미에요. 책 속에.

나는 초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일을 해서 지금껏 십여 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어요. 나 때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1/3에 해당했어요. 그중 한 친구가 소개해 버스 안내원으로 일한 일도 있죠. 그런데 내가 이미 책을 봐 버렸잖아요.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자꾸 나를 건드리니까. 그냥 먹을 만큼 벌면 일을 그만두고…. 그런 나날을 많이 보냈죠.

책을 읽으며 사는 삶이 나를 책방으로 끌어당기지 않았나 생각해요.

- 책방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서 문을 닫는 배다리 헌책방에서 책을 사오고 하셨다면서요? 
수없이 그렇게 했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어요. 책이 버려지는 일이 안타까운 거죠.


그러고 보면 정말 버려질 수밖에 없는 책을 건져올 때가 가장 기쁜 것 같아요. ‘야, 정말이지 어떻게 이게 버려지나’ 싶은 그런 책들이요.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책방 일이 힘들고 지겹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 말이 정말 낯설더라고요.

책은 물건이지만 그 한 권이 내 손에 잡히는 순간, 그것은 선물이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다 다르잖아요. 다양한 삶이 책 속에 들어있는 건데 ‘나 이렇게 난잡하게 살았습니다’라며 참회하는 글을 읽을 때면 나는 정말 부끄러웠어요. ‘나는 이렇게 반성할 수 있는가. 이렇게 철저하게 나를 반성할 줄 아는가’ 이렇게 반추해 보니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모든 책은 한 권의 성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책을 열어도 생명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이야기하잖아요.

- 개인적으로는 근 현대 역사를 다룬 소설을 읽을 때 그런 부끄러움을 많이 느껴요. 이를테면 독립운동을 한 분들 이야기를 보면 ‘나는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묻게 되는데, 답이 그렇지 않아서 한없이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책을 읽는 바른 자세라고 생각해요. 책을 정보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보는 적정량만 가져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책에 빠져드는 것은 모든 게 내 이야기잖아요.

처음부터 특별히 영단을 내린다거나 100%가 꽉 차 있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대의를 바라보고 가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겠지요. 어느 상황이 닥쳤을 때 대의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를 보는 연습’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스스로를 비춰보고, ‘이 사람이 말한 게 이런 뜻이었네?’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책을 통해 ‘나를 보는 연습’을 할 때, 어느 상황에서 움직여지는 몸이 있지 않을까요?

책에서 만나는 시련에 자신을 비춰보는 일이 필요한 거 같아요.

아벨서점
아벨서점

아벨서점
▲ 아벨서점. 사진 = 송보배


- 2006년부터 배다리 일대는 산업도로 건설로 인해 들썩였습니다. 현재 산업도로 건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현재진행형이에요. 나 같은 경우는 도로가 나면 여기가(책방이) 없어진다고 해서 ‘이제 좀 쉬면서 살라는 모양이다’ 마음을 놓았어요. 나는 정말이지 책 보는 게 소원이거든요. 책 장사하면서 정작 책을 못 봤으니, 이제 좀 소원풀이 하면서 살아도 되는 구나 싶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여기뿐 아니라 옆 집, 주변 책방이 다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런 자각을 하니 ‘아, 이렇게 무모한 기획을 할 수가 있나?’ 정말 경악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독서를 굶주리면서 책방을 해온 것은 ‘우리 사회에는 그래도 책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나마 남은 인천 역사의 뿌리를 쓸어버리는 계획을 실행하면서 너무도 당당한 거예요. 내가 사그라지는 게 무엇인지 그때 체험했어요. 정말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내가 잦아들고, 하얗게 재가 되는 것이었죠.

그토록 막막한 때에 윗동네 아주머니들이 “도로가 생긴다고 하는데 아랫동네는 가만히 있습니까?” 그러더라고요.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래 내가 이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플래카드를 만들어 들었어요. 그때 나에게는 분노밖에 없었어요. 세상이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요.

정말 힘들게 싸웠어요. 누군가는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하니까 매일 자전거를 40분씩 타고 시청에 나갔어요. 플래카드를 뒤에 싣고 시청 앞에 나가 1인 시위를 했죠.


이제 와 조금씩 산업도로를 지하로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우리는 참 늦게 깨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배다리
▲ 산업도로를 내기 위해 공사를 진행한 자리는 현재 텃밭, 꽃밭, 공원 등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 송보배
 
- 배다리 인근이 근대 역사에 있어 중요한 곳이기도 했고, 근대 건물도 많이 남아 있어요.

네. 맞아요.


박제된 박물관이 아니라 그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펼쳐야 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자꾸 이벤트만 하려고 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이벤트니 축제니 해서 가보면 거기 생명이 없잖아요.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배다리 인근 지역은 주거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에요. 그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이 담겨 있나요? 그런 것을 그냥 한 번에 묻어 버리기는 아깝지 않나 생각해요.

옛날 것이니 버리지 말자거나 옛날 것이니 붙들고 있자는 의미가 아니에요.

여기에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야 근저가, 우리의 뿌리가 제대로 놓일 것 아니에요?

- 대표님께서는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지키기 위해 많은 애를 쓰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사라져선 안 되는 이유,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지금까지 책방 골목을 지킨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사람이 지킬 수가 있나요? 개인이 아니라 책의 힘이라 생각해요. 책이 가진 끈질긴 생명력, 그것으로 인해 책은 세상에서 절대 사멸되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나는 책에서 생명 무한세계의 길을 봅니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그 너머의 깊이가 책 속에 숨어 있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그것을 무시하는 사회가 되었지요. 미디어를 통해 ‘안다’하는 사회로 바뀌었고요. 하지만 ‘안다’는 결코 ‘앎’으로 갈 수 없어요. 앎으로 가는 것은 자기 수고가 필요해요.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수고가 필요하지요. 봄에서 느낌으로, 삶에서 앎으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씨줄과 날줄을 엮어 가는 거죠.

그것이 바로 책이 가진 힘이죠. 책방은 그런 무한의 세계가 담긴 방이에요. 이게 없어진다고요? 나는 절대로 없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 이어갈 거로 생각해요.

나는 이제 우리 사회가 미디어에 한계를 느끼는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사람은 깊이를 염원하고 진화를 갈망하잖아요. 진화를 찾아, 그 목마름을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다시 도래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 사람에게는 자신을 알고 고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책, 책방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보는 것이네요.
그럼요. 그래서 내가 지켜가는 것이 아니라 세대가 지켜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세대가 책과 책방을 지켜갈 것이라는 게 제 지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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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송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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